Shostakovich Symphony No.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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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은 총 11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악장은 4명의 시인(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기욤 아폴리네르, 빌헬름 퀴헬베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소프라노, 베이스 독창, 실내 교향악단(19명) 구성으로 소규모이지만 음향효과가 한껏 발휘된 곡입니다.

<교향곡 14번> 11개 악장의 순서와 사용된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1악장. <깊은 곳에서>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스페인)

2악장. <말라게냐>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3악장. <로렐라이> – 기욤 아폴리네르(프랑스)

4악장. <자살> – 기욤 아폴리네르

5악장. <조심스럽게> – 기욤 아폴리네르

6악장. <마담, 보세요> – 기욤 아폴리네르

7악장. <라 상테 감옥에서> – 기욤 아폴리네르

8악장.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농노들의 답장> – 기욤 아폴리네르

9악장. <오오, 델비크, 델비크> – 빌헬름 퀴헬베커(러시아)

10악장. <시인의 죽음> – 라이너 마리아 릴케(독일)

11악장. <피날레> – 라이너 마리아 릴케

Shostakovich Symphony No.13 ‘Babi Y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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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바비 야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독일군이 33,771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곽의 협곡입니다. 1962년 쇼스타코비치는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가 쓴 시 <바비 야르>를 시작으로 <유머>, <상점에서>, <공포>, <출세> 총 다섯 개의 시로 다섯 악장의 교향곡을 만듭니다.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는 우여곡절 끝에 1962년 12월 18일 모스크바에서 키릴 콘드리신의 지휘로 초연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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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이 작품은 1악장에는 ‘혁명의 페트로그라드’, 2악장에는 ‘라즈리프’, 3악장은 ‘오로라’, 4악장은 ‘인류의 새벽’이라는 표제가 붙어있습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그린 <교향곡 11번>과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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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1957년 초연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은 1905년 1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악장에는 ‘궁전 앞 광장’, 2악장에는 ‘1월 9일’, 3악장에는 ‘영원의 기억’, 4악장에는 ‘경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특히 총 6곡의 혁명가를 인용했으며 그림에 나와있는 글은 4악장에 인용된 혁명가 <압제자들이여, 격노하라>의 가사입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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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이 초연됩니다. 8년 만의 새 교향곡이자 스탈린의 사망 이후 첫 번째로 발표한 교향곡은 성공적으로 공연됩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적 기호인 DSCH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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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8월,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9번>을 완성합니다. 승전과 ‘교향곡 9번’ 모두 특별한 의미와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1945년 11월 3일 초연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은 총 25분 정도의 짧은 곡으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가벼운 주제로 시작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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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1943년 여름, 쇼스타코비치는 빠른 속도로 <교향곡 8번>을 작곡합니다. 당시 독일과의 전쟁에서 전세는 소련 쪽으로 기울며 ‘비극’보다는 ‘낙관’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은 조금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곡의 초연은 1943년 11월 4일 모스크바에서 열립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7 ‘Lenin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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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1941년 12월 쇼스타코비치는 피난중이던 쿠이비셰프(현 사마라)에서 <교향곡 7번>을 완성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레닌그라드에 헌정하고, 초연은 1942년 3월 5일 쿠이비셰프에서 이루어집니다. 1942년 8월 9일에는 독일군에 의해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7번>’레닌그라드’가 공연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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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1939년 10월,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6번>을 완성합니다. 처음에 그는 마야코프스키의 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곡을 쓰려고 했지만 결국 이 계획은 무산됩니다. 완성된 <교향곡 6번>은 3악장 형식으로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에서 ‘봄, 즐거움, 젊음’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Shostakovich Symphony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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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1월 21일,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초연합니다. 이 공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언론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창조적인 응답’이라는 부제를 붙입니다. 이 부제는 1938년 모스크바 초연에서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소련의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대해 ‘인간성의 확립’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지금까지도 그의 가장 대표적인 곡 중 하나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