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초연된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원작으로 각색한 장편 만화책입니다.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우울증에 걸린 왕자가 ‘세 개의 오렌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오렌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렌지를 구한 왕자는, 오렌지 안에서 나온 공주와 결혼하게 되는데요. ‘모험을 떠난 왕자가 공주를 구해 결혼한다’는 전형적인 동화 서사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을 ‘우울증에 걸린 공주’를 주인공으로 바꾸어 각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우울증에 걸린 공주 니네타가 ‘세 개의 오렌지를 사랑하게 된다.’는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모험을 통해 니네타는 진정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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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개봉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단편 만화로 재해석한 책입니다. 컷 만화와 콜라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이며, 흑백 영화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리소로 인쇄했습니다. 본책 <칼리가리 박사의 얼굴>과 미니북 두 권(연구서, 일기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노켈(https://www.instagram.com/ps_monokel/)과의 콜라보 작업입니다.
<쇼스타코비치 그 이후>는 1953년부터 1975년까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독립출판 4컷 만화책입니다. 1953년은 이오시프 스탈린과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사망한 해입니다. 스탈린의 사망 이후 흐루쇼프, 브레즈네프를 거치며 변화하는 소련 정세와 예술계 속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창작 과정과 삶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는 1913년부터 1953년까지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출판 4컷 만화책입니다.
책의 시작은 1913년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입니다. 발레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 엄청난 논란을 몰고 왔으며, 이후 20세기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당시 막 젊은 작곡가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프로코피에프와, 프로코피에프보다 15살 어리지만 역시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쇼스타코비치, 두 인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1917 러시아 혁명 바로 다음 해인 1918년 러시아를 떠납니다. 이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커리어를 쌓던 그가 1927년, 러시아를 떠난지 9년 만에 공연을 위해 러시아(이제는 소련)에 방문하게 됩니다. 이 방문에서 그는 공연 이외에도 레닌그라드 음악가들의 모임에서 젊은 쇼스타코비치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당시 21살의 쇼스타코비치는 프로코피에프의 영향을 받은 듯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한편 1926년 5월,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음악원 졸업 작품인 <교향곡 1번>이 니콜라이 말코가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됩니다. 이 곡은 러시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브루노 발터, 토스카니니 등 유명한 지휘자들 역시 이 곡을 연주합니다.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이외에도 연극, 영화, 오페라 등 여러 장르의 곡들을 작곡하며 그 천재성을 드러냅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의 큰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다가옵니다. 바로 레스코프의 소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하고, 작품을 당시 결혼한 아내 니나 바자르에게 헌정합니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1934년 1월 레닌그라드 말리 극장에서 초연되고, 이후 모스크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인, 1936년 1월 일간지 <프라우다>에는 한 기사가 실립니다.
“음악 대신 혼돈 :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군의 맥베스 부인>에 관하여”
프라우다, 1936년 1월 28일 기사 제목
이 기사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에 큰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1936년 봄, 프로코피에프는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소련으로 영구 귀국합니다.
칸딘스키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의 서론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며, 때로는 우리 감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서론 중
저 역시 예술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작가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죠. 칸딘스키의 문구, 그 중에서도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시대 중 하나가 바로 소련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러시아, 혹은 소련을 대표하는 두 명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술과 시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같은 시대, 1936년 프로코피에프의 영구 귀국 이후에는 같은 나라에서 살았지만 걸어간 길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던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는 함께 다루어 볼 만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각각 1891년과 1906년에 태어난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시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음악 이야기를 만나보세요.